현재 컨디션

아주 좋습니다.... 신장도 제대로 자리잡은 듯 하고, 아주 가끔 미친 척 하고 먹어대는 과일 때문에 칼륨 농도가 널뛰기 할 때가 있긴 합니다만 대부분 정상범위 유지 중입니다.


이쯤에서 보고하는 그간의 일상


아침 일어나자마자 사과 하나 먹고 하루견과 한 봉지 먹고 빌리블랭크 부트캠프 얼티밋

운동 끝내고 출출하면 호밀빵에 땅콩버터 발라서 바나나 썰어넣어서 먹음.


점심으로 닭가슴살 혹은 아르헨티나 붉은 새우 3 마리와 작은 양파 반쪽, 토마토 반쪽과 오이 하나를  짜지키 소스와 버무려서 또르띠야에 가득 담아 먹은 후 소화가 다 된 것 같으면 펌핏 업 비디오에서 펌핏 업 부분만 6번 반복. 컨디션이 별로다 싶으면 그냥 전체적으로 한번만.

요가하러 가기 전에 출출하면 냉동블루베리 10 알이나 딸기 3알 
 
오후 6시부터 7시 30분까지 하타요가

요가 다녀와서 퀴노아 샐러드 (양상추 반개와 오이 1개, 토마토2개, 삶은 퀴노아 1/3컵, 작은 양파 1개, 할라피뇨1개, 후추와 소금 약간 쳐서)와 삶은 계란 2개 먹음. 

밤 11시쯤 로렌 하페즈의 Bridal Arm 과  Ballet Beautiful 에서 나온 Swan Arm 동영상 따라 하고 취침.



* 이것도 저것도 다 하기 싫고 귀찮을 땐 버피(팔굽혀 펴기 끼워 넣은 버젼) 10개씩 10세트만 하고 끝냄. 부트캠프 얼티밋 하는 게 지겹게 느껴질 때는 키이라 라셰 언니의 동영상 4~6개쯤 보면서 따라함. 일요일에는 Be Fit 프로그램 아무거나 하나만 따라하고 스트레칭만 하고 휴식.


--->상기의 일정대로 쭉쭉 진행한 결과, (아 물론 중간에 뷔페 가서 폭식을 한다거나 치킨이나 피자를 시켜서 앉은 자리에서 다 먹어치운다거나 하는 일들이 많으면 일주일에 1번, 적으면 한달에 2번 정도 있었습니다) 비만에서 정상체중으로 내려 왔습니다. 저체중보다는 약간 많은 정도의 정상체중이며, 정기적으로 받는 검사결과도 긍정적이어서 매우 만족하고 있습니다. 근력과 폐활량, 유연성 모두 향상되었다는 것이 뚜렷하게 느껴지니 확실히 자신감도 생겼구요. 

약 7개월간 15킬로그램 뺐습니다. 처음 석달은 10킬로가 쭉쭉 빠졌지만, 중간에 잠깐 요요도 있었고(ㅜ.ㅜ), 나태해진 경우도 있었지만 어찌어찌 지금까지 왔습니다. 몸이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하지만 아직도 숀티를 따라하기는 힘이 듭니다. 앞으로 석달 정도만 이대로 진행하고 운동량을 조금 줄이려고 합니다. 아무래도 시간을 많이 뺏기네요.
겉으로 보기엔 확실히 몸이 좋아보이지만 복근은 없습니다. 따로 복근운동을 하지는 않았으니 당연하지요. 수술 이후 복부에 절대로 힘을 주지 말라는 - 잘못하면 연결 부위가 터진다는;;;; - 의사선생님의 지시를 충실히 따르는 중입니다. 수술 부위 피부 특유의 튀어나온;; 그것도 여전히 있습니다. 이건 그냥 안고 살아가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상기 언급된 동영상들은 유튜브에 가득가득 있습니다.  


건강밸리가 있었으면 좋겠지만...없으니 패뷰밸로 보냅니다.

일상의 비문

한 백화점 전단에서 이상한 문장을 보았다.
"입안에서 녹는 시간이 빠른 것은 그만큼 순수한 카카오 버터를 포함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훨씬 더 부드럽고 고소합니다."라는 내용을 말하는 문장인 것 같은데, 이를 억지로 압축시키려다 아래의 괴상한 비문을 탄생시킨 것이다.




내가 특히 까칠해서 이런 형태의 비문에 불편함을 심하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그렇지! 인쇄하기 전에 한번쯤은 확인해 볼 것 아니야! 대체 편집 담당한 사람은 뭐하는 사람인가!

물론 저 초콜릿은 맛있을 것이라는 데에 내 손목을 걸 수 있다. (먹어보니 실제로도 맛있었다 ㅠ.ㅠ )아무리 맛에 자신있어도 그렇지, 광고문구는 좀 신경썼어야지. 동네 저렴한 마트 전단지도 아니고 달달이 카드 회원들에게 발송하는 정기 카탈로그(제작기간 약 한달)에 집어넣는 광고 문구 하나도 똑바로 못 쓰나....

'높은 시장'이나 '벽 시장' 전단지는 더 가관이다. 일부러 읽지 않으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읽게 되는 그 광고문구들은...
어휴... 더 이상 말하지 말아야지.

남들 신경쓰지 말고 나나 신경써야겠다.

꿈속에서 난

시댁에 있었다. 마니뿌르 촌동네인 깍찡의 쭘낭 레이카이에 있는 우리 집. 그곳에서 난, 샤워실에 온수기를 설치하고 물탱크와 연결하는 인부들과 말이 안통해 남편을 목청높여 부르고 있었다. 그 와중에 사랑스러운 시조카 하나가 슬리퍼를 탁탁 끌며 자기 삼촌-내 남편-을 찾으러 달려나갔다. 시어머니는 나의 8시 방향에서 설치현장을 반쯤은 우려스러운 표정으로, 반쯤은 설레는 표정으로 구경하고 있었다. 남편은 시부모님 몰래 집밖으로 나가 후미진 골목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시누이는 저녁 찬거리를 사러 시장에 나가려고 스쿠처 시동을 걸었다. 옆집의 개는 우리 집 닭장에서 뛰쳐나온 오리에게 쫓기며 컹컹대고 있었다.....
그 순간 깼다.

결코 편리하진 않지만, 편안한 그곳이 매우 그리웠나 보다.

내 친구 필레몬 - 산만하고 우울한 글

방금 친구가 죽었다.




내 친구 필레몬. 나쁜 자식. 그 놈 한 놈의 죽음으로 여러 사람이 상처 받았다. 나쁜 새키, 넌 죽었으면 안됐어. 

필레몬은 술을 사랑했다. 글자 그대로 해만 뜨면 음주를 시작하곤 했다. 다른 친구와 함께 마시는 걸 분명 좋아하긴 했지만,

혼자서도 앉은 자리에서 위스키 한 병을 다 비웠다. (아 참고로 인도 위스키는 싸다. 시바스리갈이나 발렌타인 가격을 생각하면 안됨. 상대적으로 풍족한 장학금을 그놈이 받긴 했어도, 인도양주의 가격이 터무니없이 싸지만 않았어도 그는 알콜중독까지는 안되지 않았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이 든다. )

위스키, 럼, 다시 보드카, 다시 위스키, 럼, 보드카 순서대로 일주일 내내 달렸던 그놈을 왜 말리지 않았냐고? 말리지 않았을 리가. 

그를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던 모오든 사람들이 말렸다. 심지어 지도교수와 학과장까지도 말이다. 그의 아버지, 남동생들, 여동생과 


의 모든 친구들, 특히 내가 제일 심하고 거칠게 말렸었다. 웬만하면 남의 일에 간섭하지 말자는 주의인데, 그의 경우엔 잔소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옆에서 보는 사람이 겁이 날 정도로 들이켜 댔기 때문이다. 아침에 그 친구가 사는 곳을 찾아가면 코미디가 

한바탕 벌어졌다.  분명 방에 불이 켜져 있었다가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방불이 꺼지고 문이 잠겼다. 이러면 100%다. 

방문을 차고 욕설을 퍼부으며 겨우 끄집어낸 그 친구의 입에선 어김없이 온갖 술냄새가 농축되어 풍겼고, 창피해 하던 그놈을 

제치고 책상구석을 보면 반드시 뚜껑 열린 술병이 있었다. 그때 강제로라도 병원에 입원시켰어야 했는데.... 누구도, 심지어 

가족조차도 필레몬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에게 욕하면서까지 방구석에서 끄집어 낼 수 있었던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필레몬 특유의 욱하는

 성격 탓에 다른 친구들은 그의 음주를 중단 시킬 수 없었다. 필레몬이 특히 내 말을 "그 나 마" 들었던 이유는, 내가 그의 친구

 가운데 유일한 여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그야말로 고전적인 의미의 "신사" 였다. 지나치게 술을 퍼마신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그야말로 완벽 신사였다. 그의 방은 항상 깨끗했고, 항상 군대 사물함처럼 각을 맞춰 정리되어 있었다. (정작 그는 육군에 지원했다가 떨어졌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서류 미비로 면접까지 가지 못했다. 내가 인도에서 만난 어떤 군인보다도 더 군인 같았던 필레몬은 인도 특유의 느린 우편 시스템과, 행정 담당 직원들의 무능함과 게으름으로 인해 필요한 서류를 제 때 받지 못해서 이미 1차에 합격했지만 2차를 진행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담배를 피울 때는 항상 허락을 받았으며, 결코 남의 험담을 하는 법이 없었다. 그는 인간적으로 다시 없을 멋진 사람이었다.

남편이 나를 만나기 전 힘들 때마다 항상 맨 처음 도와주던 사람이 필레몬이었다. 금전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그는 항상 

누군가를 도와줬다. 이런 그를 이용하던 못된 것들이 몇명 있었지만, 그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 


모쏠이었던 그는, 여자를 바라보며 대화를 할 수 없었다. 예외는 나 하나밖에 없었다. 술자리에서도, 차를 마실 때도, 그는 여자가 

자리에 있으면 굉장히 어색해 했다. 

내가 한국을 다녀올 때마다 가져오던 한라산 소주를 좋아했고 내 남편이 술자리를 열 때마다 자금을 대던 그는, 우리 집에 놀러 올 

때마다 내가 팔팔 끓여 내오던 생강차를 눈물 흘리면서도 다 마셨다.    


필레몬에게는 기이한, 동시에 내가 진심으로 존경심을 품게 만들던 습관이 있었다. 그는 술을 마시면서도 공부를 했다. 

한 손엔 럼을 들고 한 손으로는 간간이 책장을 넘기거나 타자를 쳤다. 말 그대로 死後 심사를 기다리고 있는 그의 논문의 80%는

 그렇게 쓰였다. 지도교수가  그만 되었다고, 제출하고 학위 받으라 해도, 조금만 더 다듬어야 한다며 그는 1년 연장을 했다. 

그리고 375페이지의 논문파일을 남긴 채 여느 때처럼 폭음하다 쓰러졌다. 그리고 다시 깨어나지 않았다.  


남편과 함께 필레몬의 집에 갔다. 마니뿌르의 주도인 임팔에서 차를 타고 3시간, 그곳에서 다시 트럭을 타고 2시간 동안 올라간 산

길 꼭대기에 그의 집이 있었다. 그곳에서 그의 가족들을 만났다. 필레몬의 우울증은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게 되었고, 그가 묻힌 곳의 비석을 보았다.  눈물흘리는 그의 아버지를 보면서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렇게 가버릴 줄 알았더라면, 윽박지르지 말걸...조금이라도 더 따뜻하게 대해줄 걸 하는 후회가 물 밀듯이 밀려와도, 이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마음이 아픈 것은 변하지 않는다. 

필레몬의 집에 함께 갔던 다른 친구가 내게 말했다. 필레몬은 나를 무서워 했었고, 그랬기 때문에 유일하게 내 말을 들었다고 말이

다. 내가 잔소리를 하고 윽박질렀기 때문에 그나마 덜 마셨고,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친구는 정말로 그렇게 믿는 듯 했다.......

. 내가 기억하는 그의 마지막 모습은 내가 그의 방에 있던 술병을 다 뺏어서 기숙사 쓰레기통에 버릴 때 시무룩하던 표정이다. 

그리고 그게 그의 마지막 모습이라는 것이 사무치게 아프다. 


이틀 전 남편이 꿈에서 그를 봤다고 말했다. 우리 모두 캠퍼스 안에 있는 숲속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술에 취한 필레몬이 

남편의 손가락을 깨물었다고 한다. 그리고 남편은 손에 들고 있던 냄비뚜껑으로 그의 머리를 쳤다. 

3년 전 실제로 있었던 일이 꿈에서 그대로 재현된 모양이다. 



지금 아무리 슬프고 아파해 봤자 그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그래도 가슴 한켠이 쓰라린 건 어쩔 수 없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지겠지.......

언젠가는, 괜찮아 질 것이다. 





방금 친구가 죽었다.

아직도 믿기 힘들다. 평소처럼 기숙사 방문을 걸어잠근 채 술을 마시다 쓰러졌다 고 남편이 말했다. 나쁜 자식....그러니깐 술 좀 작작 마시라고 했건만...적어도 내가 빌려간 4,000루피 갚을 때까진 살아 있었어야지. 그 친구에게 주려고 사 놓은 커피믹스가 트렁크 깊숙이 박혀있다. 기분이 안 좋다.
알콜중독이었던 그 친구를 쥐어패서라도 병원에 입원시키지 않았던 것을 죽도록 후회하는 중이다.
그 친구가 숙박할 호텔을 예약했는데, 취소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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