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감이란 이런 것인가. 진로에 대한 회의...성적이 뭐길래... 투덜투덜

가르치는 학생 중 한 명 이 자신의 성적표를 보았다. 그리고 지금 열심히 신나게 뒤에서 나를 씹는 중이다. 

내가 가르치는 대학의 학부 성적은 다음과 같이 산출된다. 세 차례에 걸친 세셔널 성적이 있고, 기말성적이 있다. 세셔널 성적은 세셔널 시험성적과 평소 class performence 점수의 평균값으로 산출한다. - 내 경우엔, 수업 참여도와 과제 제출, 수업 집중도를 반영한다. 시키는데 안하거나, 과제를 제출 안했거나, 수업중에 다른 학우들과 떠드는 것이 자주 발견되면 점수를 깎는 편이다-세 차례에 걸친 세셔널 성적 가운데 가장 좋은 성적 두 가지의 평균과 기말성적을 합한 후 다시 평균을 내어서 그 학기의 성적이 확정되는 것이다. 이 복잡해 보이는, 그러나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성적 산출 원리를 대부분의 학생들은 잘 모른다. 아니 뭐, 모를 수도 있지. 졸업하기 직전인 3학년 2학기 학생이 모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 학생은 -앞으로 편의상 A라고 칭함- 내가 과사에 제출한 제1세셔널 성적-하필 정확히 세 칸으로 나누어져 있는..ㅜ.ㅜ -을 보고서 자기 멋대로 다음과 같이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어랏? 나한테 말해준 성적과 다른데? 왜 더 깎았지? 그리고 난 세번째 세셔널 시험은 보지도 않았는데 왜 성적이 나와 있지? 
아하~! 이 강사는 학생들 성적을 미리 임의로 확정해 놓았구나! 그러면 찍어놓은 학생은 아무리 시험을 잘 봐도 성적이 개판이겠네? 이게 뭐야 대체! 이런 부정행위를 하다니!!!!학과장에게 신고하겠어!"

결국, 옆에서 학생 J가 그럴 리 없다며, 우선 담당 강사에게 확인을 먼저 해야 한다고 설득을 했다-고 한다.-반면 그 옆에 있던 다른 학생 B는 학과장에게 가서 빨리 말하라며 부추겼다-고 한다. 옆에서 부추겨주자 더 힘이 솟았는지, 그 반 학생들 전체에게 텍스트를 보내며 Santalinus 가 성적을 깎았다~~~ 부정행위를 했다~~~ 니들 다 확인해 봐야 함~~~ 이러고 있단다. 
결국 학생 J는 나에게 질문하러 와서 자신이 옆에서 본 일련의 상황들을 말해줬다. 나는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서 실소만 나올 뿐이고. 어이가 없어서 웃기만 했지만, 어쩌겠는가..지금쯤 학생A는 학과장에게 가서 자신이 찍은 성적표의 사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을 들이밀며 Santalinus 강사는 가르칠 자격이 없네, 학생을 편애하네, 그래서 성적을 미리 다 정해놓았네 등등 나는 편애를 받지 못하여 성적이 이렇게 나쁘게 나오네 등등등 을 얘기하고 있을 것이다. 학과장이야 뭐, 사진을 보고 웃어버리겠지. J에게는 그냥 A에게 아무 것도 얘기하지 말라고 했다. 어차피 본인이 판단할 문제이니 옆에서 설명해봤자 듣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씁쓸하다. 성적에 의문이 있어서 나에게 왔더라면, 충분히 설명해 줄 수 있었을 텐데.... 성급한 오해로 판단착오를 내릴 수는 있다. 
 세상을 많이 경험해 보지 못한 어린 나이의 학생이고, 인도라는 부정부패가 일상에서 만연화된 특수한 환경에서 20년을 넘게 성장했으니 그런 오해를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라고 애써 이해하고 납득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한편으로 씁쓸한 것도 사실이다.   
학생A는 지난 학기 내가 가르치던 다른 과목의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하다 걸렸다. F를 줬어야 했지만, 그랬다간 그 학생이 1년을 통으로 버려야 했기에 그냥 재시험을 치게 하고 나온 성적에 따라 C를 줬다. 그리고 그 사실을 학생 본인도 알고 있다. 부정행위를 먼저 눈감아 준 것이 나이기에, 결국은 내 잘못이다...  그래도 그 이후 열심히 공부하는 것처럼 보여서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될 법한 자료들도 많이 알려줬고, 모르는 것을 질문하러 올 때마다 최선을 다해 대답했다. 그래서 이상적인 사제지간까지는 아니더라도, 교육자와 피교육자 사이에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신뢰라는 것이 형성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바로 엄청난 착각이었음이 확인된 것이다. 허무하다.   

최고의 교육자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최악은 되지 말아야지 라는 생각으로 항상 최선을 다했다. 정작 내 연구에 필요한 시간을 뺏길지언정, 강의준비를 소흘히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불가피한 사정으로 수업을 장기간 결석할 수 밖에 없었던 학생들에겐 우리 집으로 오게 해서 밥을 먹여서라도 보충수업을 했다. 그런데 이게 대체 뭔가.... 옆에서 부추기던 학생 B에 대해서도 그렇다. B가 특정 행사를 위한 원고를 작성했을 때에는 밤을 새며 교정을 해줬다. 수업을 잘 따라오지 못하는 편이었는데, 그래서 틈이 날 때마다 보충수업으로 어떻게든 끌어올렸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이라니.

다시 학생 A로 돌아오면, A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1. Santalinus는 학점을 미리 확정 해 놓고, 편애 하는 학생에게 좋은 점수를 주는 사람이다. 
  2. 만약 Santalinus에게 학점에 대해 항의를 하면, 이성적으로 나에게 설명해주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나에게 보복을 할지도 모른다. 
  3. 분명히 나 말고도 다른 학생들이 불이익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4. Santalinus는 학생에게 알려준 성적과 다른 성적을 과사에 제출하는 부정직한 인간이다.
 이건 거의 인격모독 수준이다. 아니, 이건 정말 인격모독이다. 두 학기에 걸쳐 가르쳤던 학생이 나라는 인간을 이러한 모습으로 파악한다는 것에 절망감마저 든다. 자괴감도 들고, 내가 과연 이 직종에 걸맞는 사람인가...라는 생각도 든다. 대학에 남는 것이 그래도 비교적 상식적으로 굴러가는 커뮤니티에 속해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내가 착각했었나 싶다. 학생과의 관계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공급자와 고객과의 관계를 넘어서 학문적 동지애가 존재하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허황된 꿈을 꿨던 것 같기도 하다. 적당히 강의시간 내에 정해진 진도만 나가고, 질문에만 답하고, 그리고 일절 비공식적인 상황-사적인 인생상담, 진로고민상담,등을 원하는 학생들이 많았었고, 다 응해줬다-을 만들지 말아야 하는 것인가.... 

이게 문화적 차이라면, 정말 최악의 예시인 것 같다고 말하자 남편이 말했다. "어느 나라에나, 어느 장소에나 개새끼는 있어. 니가 운나쁘게 그 개새끼랑 만난 것 뿐이고... 그래도 학생 대다수는 너한테 만족했잖아. J처럼 너한테 상황을 말해주는 학생도 있는걸"
그렇지만 내가 한국에서 대학을 다닐 때 이런 방식은 한번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성적에 이의가 있는 학생은 그 과목 강사나 교수에게 가지 학과장에게 가지는 않는다고!  

내가 과연 이 길을 추구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인도에서 살지 말아야 하나.   



나의 수양 부족이다. 관조하자. 

덧글

  • 라비안로즈 2018/04/25 21:45 #

    참... 회의감이라던가 허탈감이 강하겠습니다. 처음부터 걍 에프를 날리셨어야 하는건데.. 속상하시겠어요.
  • santalinus 2018/04/25 22:43 #

    뭔가, 최선을 다했는데 어째서 진심이 전해지지 않을까... 앞으로도 이런 일이 발생할 때마다 비슷한 수준으로 상처를 받는다면 계속 강단에 서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 아닐까 등등 여러 가지 생각 때문에 많이 심란합니다. 별것 아닌 일로 징징대는 소리로 들리겠지만, 인생이란 게 참 쉽지 않네요.
  • 2018/04/26 01:19 #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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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4/26 02:39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타마 2018/04/26 10:48 #

    평소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사람일수록 타인의 부정행위에는 더 민감하고 꼬투리를 잡으려 하지요... 본인에게 익숙한 영역이기에...
    이번에 헛다리를 짚은 A의 경우를 봤을때... 부정행위에 대해서 온정을 베풀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겠네요.
    배움의 열정에 대해서는 소신껏 답해주고, 평가에 있어서는 칼같은... 그런 선생이 가장 이상적이나... 쉽지 않은 길이겠지요.
  • santalinus 2018/04/26 12:04 #

    정말....쉽지 않네요....
  • 하늘라인 2018/04/27 18:20 #

    지금 제가 개인교습하는 학생이 생각나네요. 이 학생도 제가 합격/불합격 성적을 주면 거기에 꼭 한마디씩 합니다. "제가 왜 불합격이에요?" "왜 불합격 준거에요?" "난 많이 연습했는데 왜 불합격이에요?"...

    저는 합격/불합격에 대해 객관적인 판단기준이 있거든요. 아무튼 최근 저도 학생 가르치면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글을 보니까 동감이 되네요.
  • santalinus 2018/04/27 18:53 #

    자신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학생들이 참 많습니다.... 시험의 성적은 시험 본 결과에 따른 것이지 학생 개인의 노력에 따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납득하지 못하는 친구들도 많구요. 성적이 별로라면, 노력이 부족했거나, 노력을 했어도 그 정도밖에 못하는 지능적 한계가 있거나... 둘 중 하나일 텐데, 후자의 경우 그 사실을 말해주기도 힘들고 학생입장에서 납득하기도 힘들죠...
  • 2018/04/28 00:41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8/04/28 01:5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8/04/28 21:16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8/04/29 16:2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8/05/12 12:39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8/05/12 21:21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8/05/15 11:26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8/05/16 00:33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제트 리 2018/05/16 10:27 #

    참 할 말은 없네요 ㅠㅠ 뭐라 드릴 말이 없네요 ㅠㅠ 아무리 부정 부패가 만연한 인도 이지만..... 학생들이 저리 나오면 허탈 하겠네요
  • 2018/08/18 21:47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8/09/27 21:18 #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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